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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루족의 부흥운동


              

 

1. 회심과 하나님의 부르심     

2.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 

3. 성령의 권능 

4. 초대 교회   

5. 죄의 깨달음과 부흥의 시작  

6. 성령의 역사 

7. 동반되는 이적과 기사 

8. 맺는 말     

 

 

 

 

 

1  회심과 하나님의 부르심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부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을 선포하는 일군으로 부르실 때에 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였다. 그것은 나는 다른 생각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나에 대하여 말할 대에 "나는 도저히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였고, 나도 그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친구들이 그들의 여자 친구들과 데이트하고 키스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내 친구들처럼 행동하기 보다는 차라리 돈을 버는 것이 더 낫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여자 친구들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 여자 친구들 보다도 더 가치있게 보였던 돈을 벌려고 노력하였다.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이 먼저, 그리고 다른 것들은 다음에"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셨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다른 어떤 목사님들 보다도 더 설교를 잘하시는 대단히 훌륭한 목사님을 모시고 있었다. 우리 어린이들은 교회로 갈 때에 사탕을 가지고 가는 습관이 있었고,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면 보통 잠들게 되거나 사탕을 먹고 있게 된다그러나 우리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에 사태가 변화되었다. 그 목사님의 설교가 흥미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설교가 짧았고, 우리는 우리 목사님이 특별히 흥미를 끌게 함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목사님은 우리 어린이들을 잘 이해하고 계셨다.

      예를 들면, 부활절 때에 피터마리쯔버그 (Pietermaritzburg, 남아프리카 동부의 크와줄루 나탈, KwaZulu-Natal, 주의 주청소재지) 에서 자동차 경주를 하는 때인데, 우리는 우리 목사님에게 가서 목사님께서 설교를 짧게 하시면 우리가 그 자동차 경주에 시간에 맞추어 갈 수 있다고 요청하곤 하였다. 목사님은 짧게 10분이나 15분 정도의 설교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은 모두 "우리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적절한 훌륭한 목사님이시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목사님은 대단히 불행한 분이셨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에 그는 먼저 공부한 어떤 학생들보다도 시험에서 훌륭한 성적을 얻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들을 많이 받은 분이셨지만, 그의 마음은 평화스럽지 못하였음으로, 그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신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유럽에 머물면서 공부하였지만 거기서도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선교사 자격으로 아프리카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교수들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왜 너는 아프리카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아프리카는 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 유럽에 머물러 일하면서 너의 아까운 재능을 아프리카에서 낭비하지 말아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농담 삼아 "우리 남아프리카에는 많은 휘어진 바나나가 있는데, 그것을 당신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휘어진 바나나를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그의 조국인 남아프리카로 귀국한 후에도 그의 마음은 평정되지 못하였다. 그는 이런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그 결과 그는 신경계통의 손상을 입게

되어 그의 의사는 잠시 그의 사역을 중단할 것을 권면하였다. 이런 자포자기의 현상 속에서 그는 프레토리아 (Pretoria,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에서 전도자 (evangelist) 로 불리움을 받았다.

      사실 그는 주변에서 그에 대한 많은 나쁜 소문들이 돌았기 때문에 전도자로서 좋게 평가 받지 못했다. 때로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면 그것은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성경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6:26)라고 말씀한 곳도 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하여, 또는 어떤 곳에서 사역을 하실 때에는 그냥 조용히 두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이렇게 단순한 전도자로서 이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을 도움이 되게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참된 믿음의 형제는 기도할 수가 있었을 것이었다. 그가 방문자에게 말을 할 때에 그는 마음 중심으로부터 주님께 울부짖었다. "주 예수님, 나는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이 나를 부수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그는 갑자기 이제까지 주 예수님께서 그의 심령과 생활속에 계셨던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애 믿음처럼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심령 속에 임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고, 이것이 그에게는 기적처럼 그의 무릎을 꿇게 하였고, 그의 심령 속에 평화로 사람을 변화시켰다. 그때부터 그의 설교가 완전히 달라졌고, 분명하게 그의 생활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님께서 우리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다섯 형제였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강제로 교회로 가게 하였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기만 하였다. 그러므로 내 스스로 "내가 성장한 다음에는 나는 이 모든 종교적인 요인들을 밖에 내쳐버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다 성장하기 전에 나에게 다가오셨다. 어떤 주일 아침에 내가 교회에 있었을 때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이라는 것과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우리 형제들은 우리가 교회를 떠날 때에는 언제나 집에 갈 때까지 논쟁을 했다. 나는 가끔 부모님께 불순종하여 왔다. 나는 여러 번 되풀이하여 부모님께 부정적인 자세를 가졌고,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하기 원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편에서 그런 일들이 죄였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였다. "오 하나님, 나는 교회에서 나는 당신을 위하여 살겠다고, 기도와 찬송을 하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미 신앙문제로 논쟁하였습니다. 당신은 나의 불순종의 신앙을 알고 계십니다." 사실 나는 아침에 기도하였고, 저녁에도 기도하였지만 내 생활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점진적으로 성장하면서 내가 지옥에 떨어지기를 원하지 아니한다면 내가 죄와 싸우기를 좋아하는 성품과 부모님께 불순종했던 삶의 자세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나에게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더 의식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대로 작은 죄나 큰 죄와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2:10에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하신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21-22에서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언젠가는 이 말씀에 따라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렇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나는 하나님 편에서 잃어버려진 죄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4)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사람의 국적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또는 황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죄가 사람의 생명을 지배하게 되면, 그 사람이 그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 죄를 단절하기 전까지는 그 영혼은 죽는다고 말씀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 "주 예수님, 나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내 생명을 변화시켜 주옵시고, 나를 나의 죄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라고 울부짖는 기도를 하였다.

      이런 기도를 하고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그의 복음사역에서 일하도록 부르시는 소명을 받았다. 나는 우리 가족 계통에서 목사나 선교사로 사역하신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내가 주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 도저히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나는 돈을 사랑하였고, 돈은 나의 우상이었다. 내가 주님의 종이 된다면 우리 교회 목사님들처럼 가난뱅이가 될 것인데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없었고, 그 대가를 크게 치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18개월 동안에 하나님께 반항했던 만큼 지옥을 통과한 셈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 나는 이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내가 방황하였던 18개월 후에 불순종의 대가는 순종하는 것의 천 배나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셨다. 나는 누구든지 내가 겪었던 일들을 겪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와 같은 우유부단한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나는 하나님께 "좋습니다. 주님, 나는 복음의 선포자가 되겠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나는 교회에서 단순히 세례식을 행하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집행하는 등의 일로서 일요일에 한 두 시간을 교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목사는 되지 않겠습니다. 이런 일들은 나에게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목사가 되기를 원하지, 나는 교회를 가지고 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나에게 지나친 대가를 지불하는 결과가 됩니다" 라고 기도하였다.

      사실은 내가 내 생명을 주님께 바쳤을 때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나는 결코 책벌레는 아니었고, 정말로 책 읽는 것이 싫었다. 학교에서 독서시간은 나에게 마음의 큰 부담이 되어 왔지만, 예수님께서 내 심령에 들어와 계신 후에는, 나는 성경을 읽는 것이 그렇게 좋았고, 성경은 나의 가장 소중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일도 하였다. 나의 형제들이 많은 속된 책들과 예쁜 소녀들의 사진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주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형제들이 모르게 이런 조잡한 책들과 사진들을 모두 모아서 불태워버렸다.

      나는 더욱더 성경에 내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과 함께 친구들 집에 초청받았을 때에도, 나는 혼자 집에 남아 있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내가 혼자 집에 남아서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했고, 언제나 선생님에게 나는 노래를 부를 줄 모른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찬송을 부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또 마음 중심으로부터 요한복음 15장과 17장과 같은 성경의 한 장씩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성경에서 말씀한 약속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놀랍고 소중한 것들이었다. 나에게 특별히 인상적인 말씀은 요한복음 15:7의 말씀인데, 그 말씀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여기에 돈보다 더 풍성한 부()가 있는데, 이것은 세상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다. 우리들이 이런 생활이 가능하게 되면 그 사람의 생애는 성경에만 약속되어 있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간구하여 받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이것이 세상의 모든 보물들보다 더 존귀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훌륭한 것이겠는가? 이런 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내 마음에 차고 넘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이 나에게 제공해 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우리 집에서 연회를 베풀고, 약혼하고, 결혼할 장소로서의 큰 무도회장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의 모든 사람들을 그곳에 모이게 하여 큰 잔치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내가 세상을 알지 못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까지 술에 만취하고 춤을 출 때의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착한 그리스도인들이고, 교회예배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을지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셨을 때에 우리는 이런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오직 주님과 그의 말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성경의 그 많은 약속들 모두가 세상이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 보다도 더 사랑하게 된다.

       나는 되풀이하여 요한복음 14:12의 말씀을 읽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복음서를 찾아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행하신 일들을 찾아보았다. 나는 기도하면서 "! 주 예수님! 당신은 그 모든 말씀들을 실현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나는 요한복음 14:12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라는 말씀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 그것으로 머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가 아버지께로 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상적인 이 말씀이 내 생각을 사로잡고 있으면서도 가끔 며칠씩이나 이 말씀을 생각해 보았다.

      가금 내 자신이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내가 주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결국 나는 그럴 수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임으로 나도 포함된 것으로 믿게 된다. 그 말씀에 따라 나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할 수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날들에 주님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특별한 보배로운 일들을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나는 그 많은 성취된 사역중의 한 가지를 더 말할 수가 있다. 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24에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주는 즐거움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함을 얻게 되는 완전한 즐거움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복음사역에의 부르심에 관하여 가끔 나는 "주 예수님!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면, 나는 주님처럼 설교하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님은 회당 안에서 설교하지 않으셨음으로, 나도 내 자신이 실내에서만 설교할 것이 아니라, 야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받아야 할 훈련을 마친 후에 주 예수님께서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게하셨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백인들에게만 설교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흑인인 줄루족에게도 설교하게 하셨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특별한 일로서, 내가 회심하기 전에는 내가 태어났고, 자랐던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의 고질적인 사상과 정부의 인종격리정책(Apartheid) 등의 영향으로 나는 흑인들이 백인인 우리들과 동등하지 않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는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감각적인 느낌과 생각을 가졌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태도를 가졌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까지 하다. 내가 전에는 그렇게 거절하였던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 심령에 거하시는 그런 일이 있은 후에는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흑인들을 위하여 그들 속에서 생활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남아프리카의 동부지역에 거주하는 줄루족의 줄루어를 말할 수 없었고, 줄루어 설교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경멸하는 흑인들의 말을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 때문에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과 내가 사역의 길로 나가야 하는 일을 준비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극복하여야 하였다.

 

 

 

2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

 

"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1-7)

 

 

      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12년 동안이나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나는 설교할 때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게 하시는 말씀을 직선적으로 설교하였는데, 나는 목사들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목사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당신이 설교할 때에 조심하시오. 당신이 그렇게 진리를 설교하게 되면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버릴 가능성이 많아요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줄루족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당신들의 생활을 변화시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지옥 가는 길에 들어서요" 라고 설교하였다.

     그 때에 줄루족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이 나타났다.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듣지만, 당신이 알아야 될 것은 기독교는 백인들의 종교요. 우리 줄루족은 우리 자신들의 종교가 있소. 당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은 당신의 조상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요. 당신이 줄루족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당신도 우리와 같이 되었을 것이요."

     "기독교는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방의 문명에서 많이 배웠고, 상당한 유익을 얻었지요. 당신들이 우리를 위하여 교회와 학교들을 지어주었지만, 기독교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도 우리들의 전통을 지키기를 원하며, 우리들의 조상숭배를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아플 때에는 병을 치유하는 무당에게 데려가서 그 아이가 왜 아프고, 누가 저주하여 그렇게 아프게 되었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사람의 영혼이 뱀의 몸속에 살게 되기 때문에, 그 떠난 영혼을 돌아오게 하고 예배들이기 위하여 축제로서 축하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작은 맥주병과 고기 한 덩어리를 이 축제 때에 죽은 자의 영혼 앞에 차려놓는 것이 우리들의 관습입니다." 이런 의식은 일반적으로 줄루족 막사의 뒷 뜰 벽에 특별히 설치한 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조상숭배가 귀신숭배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하려고 노력하였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일들이 필요 없다고 알게 하였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설명하여 왔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교가 불에 약간의 물을 붓는 것과 같아서 불꽃은 잠재우지만 달아오르는 불씨는 남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그들이 왜 옛 전통을 지키기를 원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그들의 의견이며, 모든 일들의 근원에 스며들어 있&